경멸과 모욕
평판을 갉아먹지만
남는 장사인가요?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이해관계의 차이와 갈등을 조정하는 것.
그런데 그들의 언어는 상대방을 향한 설득과 무관합니다.
조롱과 경멸의 수위는 날로 높아집니다.
전략적으로 그게 남아서 그렇습니다.
같은 편을 향한 과시, 그게 그들의 목표입니다.
사회가 오염되거나 말거나...
이제 그래도 되는지 물어야 합니다.
읽어보고 따져보기
내가 명적을 쏜 곳을
다 같이 쏘지 않는 자는
벨 것이다
집단 공격의 알고리즘.
2200년전 묵돌선우는
죽음으로 부하를 길들였습니다.
묵돌이 훈련한 건 사격술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습관'
오늘날 난무하는 온라인 좌표찍기와 집단 공격은
누가 어떻게 길들인 겁니까.
PERSPECTIVE
이 이슈를 엘제 프렌켈브룬스비크(Else Frenkel-Brunswik)의 관점으로 들여다 보면 빼 먹은 질문들이 보입니다.
엘제 프렌켈브룬스비크(Else Frenkel-Brunswik)는 1930년대에 활동한 심리학자입니다. 1950년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과 함께 낸 『권위주의적 성격』은 반유대주의를 더 넓은 자민족중심주의와, 그리고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과 연결한 책입니다.
막말은 생각이 모자라서 나오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말이 거칠어지는 자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이라는 겁니다.
엘제 프렌켈브룬스비크(Else Frenkel-Brunswik)는 편견이 강한 아이들을 관찰하다 이상한 걸 봤습니다.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뭔지 분명하지 않은 그림 앞에서 더 오래 머뭇거렸고, 한번 내놓은 답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오래 걸린 건 신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애매한 상태 자체가 버거웠던 겁니다.
그는 1949년 논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러한 해법(흑백식 해법)을 유지하려면, 그 해법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현실의 측면들을 차단해야 한다."
흑백으로 정리해 둔 답을 지키려면 회색을 없애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회색인 사람이 먼저 공격받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반대편이어서가 아니라 결론을 흐려서 표적이 됩니다.